1. 국학 운동
국어와 국사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우리말 표기의 증가와 민족주의 역사학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주시경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초기 국문학자이자 언어학자입니다. 그는 한국어와 한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표준화를 추진한 선구자입니다. 주시경은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한글을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는 독립협회 활동 중 한글표기법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국어 문법을 정리하였으며, 후진양성과 민족자주 차원에서 한글 보급운동을 펼쳤습니다. 주시경은 또한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습니다.
또한, 신채호와 박은식 같은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민족주의적인 역사관이 정립되었습니다.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입니다. 본관은 고령이며, 호는 단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며 항일 언론 투쟁을 전개하였고, 독사신론과 같은 역사 논문을 통해 민족주의 사관을 확립하였습니다. 독사신론은 신채호가 1908년에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 역사서입니다. 민족의식과 국가 위식을 고취시켜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려는 목적으로 서술되었으며, 서론에서는 인종과 지리를 설명하고, 상세에서는 단군에서 발해까지의 역사를 서술합니다.
박은식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초기의 학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교육자, 애국계몽운동가, 장치가 입니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를 주필로 활동하며 애국계몽둔동을 전개하였고,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개화사상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요 저서인 한국통사는 1864년 고종즉위부터 1911년 105인 사건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루며, 일본의 침략과 국권 상실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은식은 이 책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와 국권회복을 목표로 했습니다.
2. 문예의 새 경향
문학, 음악, 연극 등에서는 신소설, 신체시, 창가 등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성행한 소설 문학의 한 종류인 신소설은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신소설은 개화기 소설이라고도 불리며, 개화·계몽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개화의 선구적 의식을 계몽하고, 자주독립, 신교육의 필요성, 계급타파와 평등사상, 여권 존중 및 자유결혼, 자아각성등을 다룹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인직의 「혈의 누」,「은세계」, 이해조의 「자유종」, 「춘외춘」,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이 있습니다.
개화기 시가의 한 유형으로, 한국 근대시에 이르는 과도기적 시가의 형식인 신체시는 전통적인 율격의 정형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새로운 시형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신체시는 서구의 근대시 형식에 접근하여 자유시의 형식에 가까우며, 주로 국민의 계몽과 자유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있으며, 이광수의 「말 듣거라」등도 신체시의 범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가는 갑오개혁 이후에 등장한 신시의 형식으로, 근대 계몽기에 서양식 악곡에 맞추어 가창을 전제로 창작된 노래 가사를 의미합니다. 주제는 자주독립, 부국강병, 남녀교육 등의 계몽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음악적 요소가 있어 가사에 음곡을 붙여 노래로 부를 수 있습니다. 대표작품은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주제로 이종원이 작사한 「동심가」,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은 이필균 작사 「자주독립가」, 경부철도 개통을 기념하는 내용을 담고 최남선이 작사한 「경부철도가」등이 있습니다.
3. 종교의 새 경향
다양한 종교에서도 혁신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사회사업에 참여하여 고아원 운영, 학교 및 병원 설립 등으로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천주교는 조선에서 박해(순교)를 겪었지만, 서민과 여성을 중심으로 전파되었으며, 민중 구제와 교육을 통해 사회 개혁에 기여하였습니다. 1890년대부터 배론 신학교 등 신학교를 설립해 성직자를 양성하고, 경성의 경희학교과 같은 교육 기관을 통해 일반인 교육도 나섰습니다. 특히 천주교는 의민학교를 세우는 등 여성 교육에 힘쓰며 전통적으로 소외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천주교는 빈민구제와 의료 사업도 하였는데 조선 전역에 고아원과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여 사회적 약자를 돌봤고, 이는 서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개신교는 1884년 조선에 처음 전파된 이후, 교육·의료·출판 등의 다양한 개화사업을 통해 조선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렸습니다. 개신교는 배재학당(남학생)과 이화학당(여학생)등 교육기관을 설립해 근대 문물을 수용할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근대적 의료체계를 도입한 병원도 설립하였는데, 1885년 알렌이 세운 광혜원(제중원)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이후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동학은 1906년 손병희가 천도교로 개칭하였습니다. 천도교는 전통 교육을 넘어 근대적 학교를 설립해 민족의식과 근대 지식을 가르쳤습니다. 대표적으로 동덕여학교와 현재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교를 설립해 남녀평등 교육과 인재 양성에 주력했습니다. 또한 1910년대에 만세보라는 신문을 발행해 민족 계몽과 개화사상을 확산했습니다. 한글 신문으로 발간된 만세보는 대중에게 널리 읽혔고, 조선인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만세보는 사회적 약자와 평등사상을 다루며 일제의 억압에 맞섰습니다. 1919년 3·1 운동에서 천도교는 개화기 이후 종교와 사회개혁, 독립운동을 통합적으로 실천한 민족종교였습니다.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인권과 평등,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며 조선 사회의 근대화와 민족 해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종교는 1909년에 나철이 창시한 단군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족 종교입니다. 단군교로 창시하였고 후에 대종교로 개칭합니다. 대종교는 민족의식과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 간도·연해주의 독립운동 세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창립되었기 때문에, 종교 이상의 민족운동의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대종교 신도들은 의병에 합류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며, 국외로 망명한 이들은 만주와 연해주에서 독립군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특히 북로군정서는 대종교를 배경으로 건설된 독립군 조직으로,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의 지휘아래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승리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대종교는 민족교육을 통한 독립운동도 하였는데, 만주와 간도 지역에 대종교 학교를 설립해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항일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한편, 기존의 유교와 불교도 변화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박은식은 진취적이고 실천적인 유교 정신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박은식은 전통적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조선 사회가 변화해야 함을 깨닫고 개화사상을 수용했습니다. 그는 유교와 민족주의를 결합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개혁과 자주독립을 강조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승려 한용운이 민족 종교 부흥에 앞장섰고, 동시에 3·1 운동과 문화 계몽 활동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자주독립과 사회 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은 한국 불교를 일본식으로 개조하려 했고, 사찰과 승려들을 통제했습니다. 한용운은 이러한 움직임에 맞서 한국 불교의 독립과자주성을 주장하며 승려들과 불교계를 결속시켰습니다. 한용운은 불교가 단순한 종교적 역할을 넘어 민족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불교를 통한 심성 수양과 사회개혁을 강조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민중의식을 계몽하려 했습니다. 또한 불교계 대표로서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조국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한용운은 이 작품을 통해 잃어버린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독립을 위한 희생의 가치를 전했습니다. 그의 시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저항 정신을 고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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