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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훈민정음과 조선전기 문화의 발전

by 신난베짱이 2023. 11. 2.

세종대왕이_창제한_운민정음이_인쇄된_서책_국보70호
국보 제70호 훈민정음(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목차

    1. 조선시대의 문화의 풍요

    1) 훈민정음의 개발

    조선 초기에는 한자가 공식 문자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배우기에는 매우 힘들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어 고유의 발음과 문법을 정확하게 표현이 안 되는 한자는 양반과 지배층의 특권처럼 사용되어 왔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처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발명하던 시기 양반 지배층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양반들은 한자가 그들의 지식과 권력을 상징한다 생각하였기에 새로운 문자발병을 적극 반대하였고 훈민정음을 '상스러운 글자'라며 배척하였습니다. 최만리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종대황은 이러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연구를 강행하였고 그 결과,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 1444년 반포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은 한글의 기초가 되는 문자 체계로, 그 당시 한문을 사용하지 못한 일반 백성들도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의 몇 가지 특징을 알아보면 훈민정음은 한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소리문자로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만들었습니다. 자음글자는 발음할 때의 입과 혀의 모양을 본더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ㄱ"은 혀가 목구멍에 닿는 모양을, "o"입술 모양을 나타냅니다. 창제 당시 훈민정음은 총 28자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자음 14자, 모음 10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훈민정음은 정부가 백성에게 국가의 통치 이념을 쉽게 전달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것은 민족 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식의 평등을 향한 혁명적인 시도였으며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과학적 사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업적은 조선을 넘어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유산입니다.

    2) 조선시대 문화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서적이 편찬되었으며, 조선 전기의 역사 연구는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통성 확립과 교육적 역할을 중시하며 발전했습니다. 왕조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백성들에게 유교적 질서와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중요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문화와 지식의 발전을 촉진했으며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서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서

    역사서를 알아보면 조선 왕정 역사를 기록한 편년체(연대순) 역사서로 왕의 통치와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정리한 자료인 「조선왕조 실록」이 있습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 동안의 정치와 사건을 정리한 역사서인 실록은 조선 왕조의 가장 중요한 사료로, 매 왕의 통치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실록이 작성되었습니다. 「고려사」고려 왕조의 역사를 정리해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한 역사서입니다.  「동국통감」 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한국 최초의 편년체 통사(통일화된 역사서)로,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담은 중요한 역사서입니다.

    지도와 지리서

    지도와 지리서는 동아이사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중 하나인「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있습니다. 이 지도는 1402년 조선 태종시기에 김사형, 이무, 이화 등이 참여하여 제작하였고, 중국 중심으로 그려졌으며,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 대륙까지 나타내며 당시 조선의 세계관을 보여줌으로써 동아시아의 지리학적 지식과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 지도는 현재 한국에 없고 일본 교토의 류코쿠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조선 세대의 지리학정 연구와 행정 관리의 일환으로 제작된 지도인 「팔도도」는 조선 팔도의 산맥, 강, 호수, 해안선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팔도의 행정 구역을 상세히 나타내어, 각 도의 경계와 주요 도시, 군, 현 등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중앙 집권화와 행정 관리의 필요성에 의해 성종 때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은 전국을 양경(한성부, 개성부)과 팔도(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로 나누어 각 지역의 연혁, 산천, 인물, 풍속, 토산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농서, 의서, 법전

    1429년 세종대왕 시절 정초와 변효문 등이 참여하여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법을 기록한 최초의 책인 「농사직설」은 중국의 농서에 의존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조선의 기후와 풍토에 맞은 농법을 기록하기 위하여 편찬되었습니다. 곡식류 재배에 중점을 두어 벼, 보리, 밀 등의 재배방법을 상세히 기록한 것뿐만 아니라 농기구 사용법과 비료 사용법도 포함하였습니다.

    1433년 세종대왕 시기 편찬된 「향약집성방」은  의학서로, 기존의 의서인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여, 침구법, 향약 초본, 포제법 등을 보충하여 간행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약용식물 702종류를 분류하여 기록하였고, 각 약재의 약성(약재의 성질), 주치(약의 여러 효능 중 으뜸으로 잘 듣는 효능), 이명(다른 이름) 등을 열거하고, 이를 상, 중, 하품으로 구분하여 이용이 편리하도록 하였습니다. 「향약집성방」은 조선의 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이후 간행된 여러 의서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경국대전」 은 조선 시대의 최고의 법전으로, 세조대 편찬을 시작으로 성종 때 완성된 통일법전입니다.

    세조는 육전상정소를 신설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대법전 편찬을 목적으로 법전 제작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1460년 「호전」이 먼저 편찬되었고, 이후  「형전」등의 편찬이 이루어졌습니다.

    「경국대전」의 구성은 이조의 조직과 소관 사무를 규정한 「이전」,  호주, 조세, 곡물 따위의 호조에 관련된 사무를 적은 「호전」, 예조의 예악(예법과 음악), 제사, 연향(잔치를 베풀어 손님(국빈)을 접대함), 조빙(신하가 조정에서 임금을 만나는 일과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사신을 보내는 일), 학교, 과거 등의 사무를 규정한 「예전」 , 병조의 모든 소관과 군사에 관한 「병전」, 형조의 소관 사항을 규정하는 「형전」, 조선시대 공조의 여러 사무에 관한 규정을 담은 「공전」 이렇게 육전으로 구성하여 각 전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여 규정하였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

    조선 전기에는 특히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천문학과 역법이 발전하였는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초기부터 제작된 천문도로, 중심부에 북극성을 두고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와 적도를 나타냈습니다. 하늘의 별자리를 12 분야로 나누어 그렸으며, 각 별의 위치와 밝기를 표시하였습니다. 이 지도는 1395년 태조 4년 처음 돌에 새겼으며, 이후 여러 차례 목판, 필사본 등으로 복제되었습니다. 

     천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사용된 전통적인 천문 관측 기군 혼천의는 혼의기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립니다. 1433년 세종 15년에 처음으로 제작되어 이후 여러 차례 개량된 혼천의는 여러 개의 고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태양, 달, 오행성(수성, 금성, 황성, 목성, 토성)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세종 16년 제작된 물시계인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간마다 종이 울리도록 한 국가 표준 시계입니다. 조선 전기 대표 과학자인 장영실과 김조 등이 제작하였으며, 흐린 날이나 밤에는 제 역할을 못하는 해시계인 양부일구의 단점을 보완하여, 흐린 날이나 밤에도 시간을 알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자격루는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립 고궁 박무관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의 뜻을 가진 양부일구는 조선 세종 16년에 제작된 해시계로 장영실과, 이천, 김조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이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제작하였으며, 가마솥모양의 시계판에 태양의 그림자를 이용해 시작을 측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칠정산」 조선 144년 세종 때 편찬된 역법서로,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서술한 책입니다. "칠정"이란 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을 말합니다. 「칠정산」 중국의 수시력과 대통력, 그리고 이슬람의 역법이 회회력을 기반으로 하여 한양의 경위도에 맞는 밤낮의 길이와 일출입 시간 계산의 보정치를 추가한 것입니다.  조선의 천문학적 지식과 기술을 나타내는 「칠정산」 은 당시의 행정과 농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쇄술로는 고려의 금속 활자를 개량하여, 계미자와 갑인자 주조를 실시했습니다. 1403년 태종에 주조된 금속활자인 계미자는 조선 최초의 금속 활자입니다. 이 활자는 주로 불교 경전과 같은 종교 서적을 인쇄하였습니다. 갑인자는 1434년 세종시대에 주조된 금속 활자로, 계미자보다 더 정교하고 세련된 활자입니다. 갑인자는 「칠정산」과 같은 과학 서적을 포함 다양한 서적을 인쇄하였습니다.

    무기 역시 발달하였는데 대표로 신기전과 화차가 있습니다. 로켓추진 화살인 신기전은 1448년 세종 때 만들어졌습니다. 신기전은 형태에 따라 대신기전, 신화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으로 나뉩니다. 다연장 발사 무기인 화차는 고려시대 최무선이 만든 주화를 기반으로 조선초기 발명되었으며, 1409년 태종시도 처음 기록되었습니다. 두 바퀴가 달린 수레 위에 총통기나 신기전기를 올려놓고 사용했습니다. 신기전과 화차는 여진과 왜구를 격퇴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